리뷰

블랙 미러 시즌 7 율로지 리뷰

OTT 보는 남자 2025. 4. 15. 14:39

넷플릭스 드라마 추천 블랙 미러 시즌 7 율로비 리뷰 후기 해석 결말 정보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 

 

영어로 율로지는 추도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장례식 문화가 다르긴 하지만 서구권에서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모여 저런 추도문을 읽기도 한다. 아시아권은 며칠간 장례식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아무 시간때나 와서 인사를 드리고 밥을 먹고 가는 경우가 많지만 서구권에서는 그런 식으로 하기보다는 가족들이나 지인들을 특정한 시간대에 모아 놓고 결혼식처럼 진행한다. 우리나라는 삼일장 문화가 깊게 자리잡고 있는데 노인들이 많아지고 장례식이 빈번해지면 이런 문화도 조만간 사라지지 않으려나. 

 

블랙 미러 율로지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추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추억이라는 건 기억에 기반하고 사람의 기억은 어느 정도는 합리화 혹은 미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미화하기가 힘든 기억들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넘어 간다. 차라리 떠올리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는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노년의 남자 필립은 어느 날 의외의 전화를 받는다. 자신의 젊은 시절 연인이자 열렬하게 사랑했던 캐럴의 부고 소식이다. 오래도록 잊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잊을 수가 없었던 그 이름 캐럴. 

 

그렇게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 전화인 줄 알았던 필립은 그게 아니라 추도문을 작성하기 위해 캐럴의 젊은 시절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다가 자신에게까지 소식이 닿은 걸 알게 되었다. 새로운 첨단 기술로 인해 기억을 떠올리면 고인과의 추억까지 복원할 수 있고 추도문에 쓰일 수 있다고 하기에 어려운 일도 아니니 흔쾌히 승낙한다. 곧바로 드론 배송으로 전달된 뇌와 연결하는 작은 기기와 함께 캐럴과 닮은 가이드가 이 기억 복원 여정을 함께하기 시작한다. 

 

필립은 캐럴과 불같은 사랑을 하였으나 캐럴이 너무 모질게 자신을 떠났다고 가이드에게 이야기한다. 자신은 캐럴만을 바라보고 사랑해 왔으나 캐럴과 헤어진 건 오로지 냉정하고 야멸찬 캐럴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과거를 회상하며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동안 필립이 무시하던 진실이 밝혀진다. 알고 보니 필립이 먼저 자신에게 관심이 있던 여성과 바람을 피웠고 본의 아니게 그걸 캐럴이 알게 되었으며 캐럴은 충동적으로 그 날 같은 음악 단원과 사랑을 나누고 나서 딸을 임신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모든 원인 제공은 필립에게 있으나 캐럴은 이를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고 캐럴이 남긴 절절한 편지 역시 필립은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연인이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메시지 정도는 읽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더 찌질한 필립의 모습에 오만정이 다 식긴 했으나 젊은 시절 불같은 관계에서 오해와 질투는 항상 따라오는 거라 필립이 왜 그렇게까지 캐럴을 미워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모든 걸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마 필립 본인도 이 관계가 틀어진 건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었을까. 본인의 나약함과 치사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동안 모든 책임을 캐럴에게 전가했던 건지도 모른다. 오히려 캐럴은 모든 상황을 어른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던 반면 필립은 캐럴 탓만 하며 평생을 후회로 채웠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다. 캐럴은 자신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이었으며 이 모든 관계를 근본부터 흔든 건 관계에 충실하지 못 했고 캐럴의 본심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본인이었다는 걸 말이다. 

 

너무 늦게 알았지만 덕분에 캐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캐럴의 딸이 캐럴이 만든 첼로 자작곡을 연주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 블랙 미러 시즌 7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스토리 라인인데 애절한 내용은 아니지만 감동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 시절 남탓 만을 하며 나의 치기어린 행동에 대한 변명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타인은 나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지만 선택을 하는 건 결국 나이고 결론적으로 보면 모든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다. 냉정하게 보자면 필립은 캐럴의 진심을 단 한 번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캐럴이 첼로를 계속 하고 싶어하던 것도 그리고 자신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도 전혀 모르고 관계를 무책임하게 놓아 버렸다. 

 

기억이 미화되는 건 어쩔 수 없고 모든 게 남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긴 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스스로 성장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모든 일의 해결은 대화에 있다. 필립 역시 캐럴과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한 대화를 했다면 아마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필립은 자신만의 판단으로 캐럴과 단절을 했고 그렇게 이 관계는 아예 막을 내렸다.

 

그러나 나도 안다. 진정성있는 열린 대화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를 말이다. 중요한 타인과의 대화는 오히려 나의 속살을 드러내야 하기에 시작조차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사랑하고 애정한다면 다소 애매하게 마무리되거나 연락이 끊긴 사람과 진정한 대화를 해도 되지 않으려나.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필립의 마지막 표정은 뒤늦은 후회가 얼마나 사무친 일인지를 절절하게 말해준다.